CJ대한통운 인천 강서센터 택배 서브 터미널에 가다

 
하루 16시간을 종종거리며 뛰어야 택배 100여개를 배송할 수 있었던 열악한 근무환경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 2008년 택배 화물 1개당 운임은 2500원으로 하루 종일 배송을 해 봐야 한달 수입은 250만원에 그쳤고, 이 때문에 택배서비스 질을 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당시 일선 택배노동자들의 하소연이었다.

그럼 10여년이 지난 2017년의 택배 배송 일선 노동현장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 됐을까? 그 답은 ‘이제 현장이 변화를 시작했다’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연간 20억 개가 넘는 물량 증가에 따른 택배 배송지역 축소와 시스템 진화 덕분이다. 물론 택배서비스 변화는 1등 택배기업에 국한 된 이야기며,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향후 택배서비스 현장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올해 초 출범한 택배연대노조는 여전히 택배현장의 노동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지적처럼 과연 택배 노동현장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할까? 이를 검증해 보기 위해 찾은 2017년 현재의 택배현장은 이전의 살인적인 노동의 환경에서 서서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물류신문은 2017년 현재 택배현장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과연 택배연대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노동현장에 대한 현황은 어떤지, 동행 취재해 택배 현장과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 지난해 국내 택배시장에서 취급한 택배 물동량은 약 20억 5천 만개에 달한다. 택배서비스가 휴무하는 2016년 법정 공휴일과 일요일인 66일을 제외하면 보통의 택배노동자들 배송 근무일수는 299일로 휴일도 적고, 여타 직업과 비교해도 여전히 노동 강도는 쌘 편이다. 또 야외에서 근무하다 보니 사계절을 고스란히 몸으로 견디며 일해야 한다.

한편 전체 택배 물동량 20억 개를 근무일수인 299일로 나눠보면 하루 평균 국내 택배 물량은 약 687만개에 이른다. 지난 2008년 하루 평균 물동량 300만 개과 비교하면 무려 2배 이상의 물량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통상 물동량이 증가하면 노동의 강도는 높아지지만, 택배서비스는 새로운 진화를 맞고 있는 중이다. 물론 특정 택배기업으로 특화된 지역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전통의 택배시스템은 변화를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물량 증가와 배송지역 조밀, 하루 2~3회 배송

한겨울 추위는 지나갔지만, 아침 공기는 여전히 코끝을 찡하게할 만큼 차가웠던 3월 7일 오전. 추위는 지났어도 택배터미널은 춥다는 선입관 때문에 든든하게 옷을 입고 도착한 CJ대한통운 인천 강서 택배서브 터미널은 예상대로 차가운 바람으로 영상 1도라는 기온에도 불구,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온 몸을 움츠리게 했다.아침 일찍 도착한 도심 외곽에 자리한 택배터미널은 예전 택배현장과 사뭇 달랐다. 통상은 오전 일찍 대형 탑차로 허브 택배 터미널로부터 간선 운송되어 온 택배화물들이 도심 인근 서브터미널에 하기한다.
이렇게 간선차량에서 내린 화물은 일일이 그날 배송할 택배화물을 전체 배송기사들이 각자의 차량에 적재하기 위해 화물을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화물은 빠르면 10시, 또 물량이 많은 날 터미널이 복잡해지면 늦을 경우 오후 1~2시에서야 배송에 나서, 밤늦어서야 배송을 완료한다. 물량도 증가했고, 배송지역도 예전보단 조밀해져 배송서비스는 쉬워졌지만, 전체 배송시스템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야외에서 택배화물을 내리고, 분류한 뒤 다시 최종 배송차량에 적재하는 작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 강서 서브터미널에서 주목할 장비가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택배현장 분류 자동화 설비인 ‘휠소터(Wheel Sorter)’. CJ대한통운(대표이사 사장 박근태)은 지난해 말 1227억원을 들여 전국 택배 서브터미널 2백 여곳에 현장분류 자동화 설비인 ‘휠소터’ 설치를 결정,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에 처음으로 설치해 여러 테스트 및 현장 안정화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공식 운영을 개시했다.

이렇게 설치된 휠소터는 말 그대로 작은 바퀴들을 이용해 택배 상자들을 배달지역별로 분류해주는 설비다. 기존에 수작업으로 하던 것보다 분류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이 훨씬 절감된다. 휠소터 도입으로 분류 시간은 기존보다 2~3시간 단축됐고, 택배화물이 배달지역별로 자동 분류돼 분류에 드는 수고도 한결 줄었다. 덕분에 기존보다 택배기사들의 배달출발 시간과 퇴근시간이 2~3시간 이상 앞당겨졌으며, 배달 물량은 유지되거나 더 늘었다. 이렇게 환경과 시스템을 바꾸니 하루 1회전 하는 기존 배송패턴은 많게는 3회전도 가능하게 변했고, 배송 시작시간도 빨라지면서 전통적인 택배 배송패턴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고된 노동현장에서 변화를 맞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환경은 이곳이 처음이고, 새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0여개 배송에 걸린 시간 4시간 30분, ‘어떻게?’

이날 택배 현장체험에 함께 동승한 배송기사는 강서 서브터미널에서도 알아주는 베테랑인 차민수(40)씨. 택배 배송이 천직이라는 차씨는 택배서비스를 시작한지 7년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차 씨는 8시 즈음 출근해 출발 전 이미 자신의 배송지역인 서울 강서구 화곡8동 화물 200여개를 휠소터에서 분류하고, 차량에 적재한 뒤 10시쯤 터미널을 출발했다.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서비스 맨과 택배현장은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서비스로 감동 그 자체였다. 예전에 비해 부피가 작은 상품이 많았고, 이렇게 배송될 크고 작은 택배 화물 200여개. 보통 같으면 하루가 꼬박 걸려도 배송을 할 수 없을 만큼의 물량이지만, 오존 10시에 터미널을 출발해 배송완료 후 터미널로 복귀한 시점은 오후 3시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200개 화물을 서비스한 시간은 총 5시간이 안 걸린 셈이다. 이렇게 빠른 배송의 비결은 배송 내내 차씨에게 있다. 그는 배송 내내 한 순간도 걷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또 배송담당 지역과 건물은 이미 머릿속에 상세히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씨는 “택배는 몸으로만 하는 일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 머리를 쓰면 일도 빨라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적다”며 “아무나 몸만 건강하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실제 배송에 나선 화곡8동은 말 그대로 빌라 타운을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빌라들이 조밀하게 자리해 배송직접도가 높은 지역이다. 그래도 차씨는 그 많은 빌라 현관문 비밀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어 배송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배송은 빠르고 정확했다.

여타 경쟁사 택배배송사원은 배송할 집 호수를 누르고 현관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차씨는 이들 빌라 현관문에서 지체하는 시간 없이 배송시간을 단축했다. 이와 함께 대다수 고객들이 없는 곳은 예전보다 더 많아 70%에 달했다. 하지만 차씨는 고객이 없을 때 화물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지 까지 속속들이 꾀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부터 집 앞과 지하주차장 구석구석까지 분실될 염려가 없는 곳에 배송을 한 셈이다. 또 어느 집은 아기가 초인종을 누르면 안 되고, 또 어느 고객은 직접 통화해 택배를 보관할 곳을 지정받는 등 택배서비스는 말 그대로 물 흘러가듯이 진행됐다.

이렇게 배송을 마치고 다시 분류되어 오후에 배송해야 할 화물을 가지러 택배터미널에 온 차는 “지난해 얻은 늦둥이를 보면 지금은 토요일도 없지만, 최선을 다해 일에 충실하려 한다”며 “한 달 수입도 많을 경우는 700만원까지 가능하고, 자기 일에만 성실하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는 만큼 현재 일에 만족 한다”고 말하며 오후 배송 준비에 나섰다.

 
◆희망이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아파

여전히 택배현장 배송서비스 노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화물 분류부터 차량 적재와 배송 내내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만큼의 외부 환경요인을 그대로 견뎌내야 하는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택배일이 힘들다는 것을 고객들도 알아 배송 현장에서 사과나 쿠키를 건네는 고객도 있고, 생수 한 병을 준비했다 손에 쥐어주는 고객들도 있었다. 또 이전에는 희망 없이 살인적인 노동을 그대로 견디면서 일했지만, 지금은 고객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돼 성실히 일하면 돈도 모으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택배산업이 노동자, 혹은 택배기업 혼자 현재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연간 20억 개의 택배화물이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노동의 대가를 나누고, 기업을 확장하는 미래를 열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취재 현장인 강서 택배터미널에 구비된 ‘휠소터’ 가격은 10억이 훌쩍 넘는다. 전국 200여개에 설치하려면 그 비용만도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CJ대한통운 한 회사몫일 뿐이고, 전체 택배현장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개선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기업의 몫으로만 남겨 투자하라는 것은 모순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배송되는 택배운임은 2500원에도 못 미치는 만큼 이제 정당한 물류비용을 지불하고, 이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이곳 강서터미널 소속 택배기사들의 반응은 ‘신세계가 열렸다’는 표현을 쓸 만큼 긍정적이다. 또 경쟁사 택배기사들도 소문을 듣고 종종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바뀐 점을 듣고 놀라워하고 많이 부러워들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고작 CJ대한통운의 5개 터미널뿐이며, 나머지 택배기업들은 이제야 장비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인천 강서 서브터미널 현장은 신세계를 열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택배 현장은 여전히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택배 노동 현장의 개선 노력에 모든 관계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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