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6

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6

중국을 지나가는 국제철도로는 만주 종단, 몽골 종단, 중국 횡단 세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철도망을 활용해 유라시아로 간다면 어떻게 가야할까? 만주 종단은 주로 대련, 몽골 종단은 주로 천진, 중국 횡단은 연운과 청도를 사용한다. 중국 중심 항구인 상해를 통해서 가면 어떨까? 상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이지만, 부두에서 상해역까지 철로가 연결되지 않아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 횡단철도의 점진적 발전
중국 횡단철도(TCR, Trans China Railway)는 중국 동부와 서부를 가로지르는 약 4,000km의 철도다. 실크로드가 있었던 지역을 따라서 중국 횡단이 깔렸으므로, 역사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만 해도 100년이 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국 횡단은 1992년에 연결되었으므로 고작 25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중국 수출자들도 중국 횡단을 회피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화물 위치추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 컨테이너가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중국-카자흐스탄 국경은 강풍이 불면 컨테이너가 날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풍에 공컨테이너가 돌아갈 수는 있어도,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를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이다. 셋째, 국가 전략화물들이 우선 순위라서 일반 화물의 운송기간이 불안정하였다. 그래서 조금만 늦으면 화주들에게 전략화물 운송기간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넷째, 카자흐스탄 국경에서 광궤로 변경해야 하는데, 카자흐스탄에서의 광궤 화차 공급이 부족한 일이 자주 있었다. 다섯째, 중국횡단이 거리가 짧아 운송료가 저렴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러시아 횡단과 대비하면 그리 저렴하지도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삿짐, 개인 영세업자 화물들, 중국산 화물들이 중국 횡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엘지, 삼성, 현대차, 지엠 등 대기업들도 중국 횡단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 횡단을 사용하면 선적서류를 바꿀 수 있었기에 수입자들은 관세 절감의 수단으로 중국 횡단을 선호하였다. 중국 횡단과 시베리아 횡단의 경쟁 구도에서 중앙아시아의 민간 수입자들은 중국 횡단을 선호했다. 운송서비스의 품질이나 시간, 비용 때문이 아니라 서류 바꿔치기로 관세 절감을 꾀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유럽향에서도 중국 횡단노선을 사용하는 화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11년 가을이 되면서 중국 횡단의 정체가 극심했다. 화물은 몰리는데 카자흐스탄의 화차가 부족했다. 카자흐스탄-중국 국경인 ‘도스틱’역에서 카자흐스탄 철도청은 화차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다. 따라서 중국의 청도나 연운항에서 무려 60~80일을 대기해야 했고, 수출업자들은 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또한 많은 수입업자들은 생산이나 판매를 포기했다.

그러나 때로는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류대란 때문에 수입을 포기한 업체들은 시장점유율이 떨어졌지만, 끝까지 물류를 챙긴 수입업자들은 반대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외국인 수입자들은 수입을 중단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간다‘라며 밀어붙인 우리나라 주재원들은 점유율을 높이기도 하였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횡단만 생각하면 ‘진절머리 난다’, ‘너무 오래 걸린다’라는 과거의 아픈 추억을 간직한 수출입사 업자들이 많다.

국경 관문 ‘호르고스’
2013년 카자흐스탄과 중국은 ‘호르고스’라는 국경 관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호르고스가 개설된 이후 심각한 화물 정체는 사라졌다.

호르고스는 보따리 영세 상인들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트럭을 이용해 운송하던 곳으로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트럭당 얼마만 세관원에게 쥐어주면 통과되는 불법 통관의 관문이었다. 통상 국경지역 명칭이 국가 간에 서로 다른데, 카자흐스탄과 중국은 똑같이 ‘호르고스’라고 부른다.

필자가 아는 두 명의 젊은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호르고스의 세관에서 일했었다. 호르고스 세관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이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은 주중에는 400Km 떨어진 호르고스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알마티에서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녔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관세 동맹을 맺게 되자, 러시아는 호르고스가 마음에 걸렸다. 관세를 내지 않은 중국산 화물이 카자흐스탄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푸틴 정부는 나자르바예프 정부에게 ‘제발 호르고스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호르고스의 세관 검색 모습을 담은 비디오도 함께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수십 명의 세관 담당자들을 구속시키거나 가택연금시켰다. 그런데 호르고스 세관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같이 일했던 우리나라 직원도 구속이나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 직원이 호르고스에서 통관 업무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진 것이다. 하룻동안의 철퇴로 호르고스는 투명해졌다.

일대일로
중국의 내륙에 위치한 중경, 서안, 성도 지역에 HP, 델(Dell), 애플(Apple) 등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공장이 들어섰다. 내륙에 위치한 기업들에게는 동부 항구로 화물을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상해나 닝보로 옮긴 후 대형 선박에 선적하면 유럽까지는 족히 40~50일이 넘게 걸린다. 동부 항구로 가지 않고, 유라시아 횡단을 통해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 빠르다. 중국 횡단은 해상보다 무려 2~3주를 앞당길 수 있다. 중경에서 독일까지 약 20일이면 도착한다.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이 수립된 이후부터 중 국횡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철도로 운송하는 경우에는 중국 정부가 운송 보조금까지 지원해 주었다.

물류는 역시 물량이다. 물량이 중국 횡단으로 집중되면서, 가장 큰 단점이었던 ‘운송기일의 편차가 심한 것’도 사라졌다. 연운항, 청도에서 4~6일 동안 대기한 후 발차하면, 7~9일이면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동부 항구에 있는 물동량도 철도를 타기 시작했다.

중국-카자흐스탄 횡단
카자흐스탄 정부도 중국 정부에 보조를 맞췄다. 카자흐스탄 철도청은 신규 화차를 계속 발주하면서 운송이 지연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니, 국경 도착 후 몇 일 이내까지는 환적해 발차시키겠다는 것을 중국 철도청에 확약해주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은 중국-카자흐스탄 횡단을 통한 유라시아 횡단에 아주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2017년 4분기 현재 중국의 약 8~10여개 도시와 유럽의 7~8개 도시가 각각 일대일 방식으로 대응하듯 연결되어 운영되는데, 그 운송 골격은 ‘(중국)~도스틱·호르고스~카자흐스탄~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유럽연합)’다. 이 구간을 통해 유럽에 연결된 열차는 2017년 한해 동안 약 2,000회, 컨테이너 약 16만TEU에 달할 예정이다. 3~4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물동량이다.

표준궤와 광궤가 바뀌는 두 국경인 도스틱과 호르고스가 중국 횡단과 카자흐스탄 횡단을 연결하는 핵심이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의 물류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태세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향할 때에도 철도를 타고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간 화차의 50% 물량이 화물을 실고 되돌아오고 있다. 50%는 공화차로 되돌아오긴 해도 말이다.

중국 횡단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지다
중국 횡단의 발전은 낙후된 중국 서부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일본, 필리핀, 베트남,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가들에 의해 남중국 해상이 봉쇄될 경우 중국횡단을 통해 그 우회로를 만들려는 부수적인 목적도 있다.

중국 횡단은 카자흐스탄을 통해서 유럽과 중앙아시아로 간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파키스탄 국경을 통해 인도양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두발 더 나아가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통해 이란으로 연결하려고 한다. 중국 횡단을 통해 중앙아시아, 유럽 뿐 아니라 카프카즈, 이란, 인도양으로 뻗어나갈 태세다.

유라시아 시대, 실크로드 시대, 중국 횡단의 시대다. 중국 횡단으로 인해 유라시아인들에게 유라시아가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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