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기물류현장에서 퇴직금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류현장 근로자들 중에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상한 질문으로 들리겠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는 근로자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이는 물류현장 근로자가 한 회사에서 1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노동 강도, 업무가 고되다는 이유로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타인의 강요와 불합리한 처사 등을 참지 못해 근로자들이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는 악덕 인력공급업체들의 희한한 수익구조와 꼼수가 숨겨져 있다. 시장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살펴보았다.

근로자 퇴직적립금 챙기는 인력공급업체들
퇴직금은 근로자가 일하던 사업장에서 일정기간을 근속한 뒤 이를 그만두었을 때 사용자(고용주)가 일시에 지급하는 급여를 뜻한다. 현행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법령퇴직금의 요건은 ‘1년 근속에 30일분의 평균 임금’이다. 그러나 일부 물류현장의 근로자들에게는 퇴직금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퇴직금을 받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일부 인력공급업체들의 경우 근로자들이 1년 넘게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가 오랫동안 일하면 숙련도가 향상되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길 일이지만, 1년이 넘으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기피하는 것이다.
물류사업은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어야 제대로 서비스 품질이 나온다. 또한 숙련된 인력이 많을수록 생산성도 향상되기 때문에 사용자는 수익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공급업체들이 퇴직금 지불을 꺼려 장기근속자를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서다. 근로자들이 받아가야 할 퇴직금을 회사의 수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이상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물류기업에게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업체로부터 매월 근로자들에 대한 퇴직적립금을 받는다. 그런데 근무기간이 1년을 넘기지 못하면 근로자들에게 적립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즉, 근무기간 1년 미만의 근로자가 퇴직하면 그동안 쌓였던 퇴직적립금은 온전히 인력공급업체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한 물류센터에 매월 급여 250만 원씩, 근로자 50명을 공급하는 용역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용역회사는 원청업체로부터 매월 근로자 1인당 약 20만 8,300원 수준의 퇴직적립금을 지급받는다. 이를 10개월 간 유지하다가 다른 근로자들로 대거 교체한다면 이 회사는 그동안 쌓인 퇴직적립금 1억 415만 원을 고스란히 수익으로 챙길 수 있게 된다. 법의 빈틈을 교묘하게 노려 근로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를 편법으로 갈취하는 것이다.

한 인력공급업체 대표는 “퇴직적립금을 자신들의 수익으로 돌리는 인력공급업체들의 행위는 이미 오랫동안 관행처럼 해왔던 일”이라며 “근로자들의 피를 갉아 먹는 행위는 이제 없어져야 할 과제다”고 말했다.

“먹고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항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인력공급업체 관계자들은 근로자들의 퇴직적립금을 자신들의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편법으로 수익을 챙길 수밖에 없는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뜻이다.

인력공급업체들은 원청업체가 지급하는 비용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에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이며, 회사의 유지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쓰게 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들은 일부 대형 물류기업의 경우 화주기업(고객사)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공급업체에게 입찰 기준가를 임의로 책정해 제시하거나, 최저임금이 아니면 인력공급 입찰을 따내지 못하는 선정 기준을 만들어 인력공급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며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력공급업체 A사 관계자는 “상당수 원청업체들은 인건비를 최저 임금 수준으로 맞추고 싶어 한다. 그에 반해 업무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리스크 등의 책임은 인력공급업체들의 몫으로 돌린다. 이 때문에 몇몇 인력공급업체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퇴직적립금을 악착같이 챙긴다”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인력공급업체 대표이사는 “퇴직연금 도입 등으로 이러한 편법 행위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근로자는 물론 업계 전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원청업체들이 먼저 길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력공급업체 B사 관계자는 “드물지만 인력공급업체를 담당하는 원청 업체 관리자 중에는 현금 등으로 리베이트를 받으려는 이들이 있다”며 “이러한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원청서 퇴직금 발생 시 지급 규정 만들기도
수익 창출을 위해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으려는 인력공급업체들의 꼼수를 알게 된 근로자들의 불만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그동안 상당수 근로자들은 퇴직금에 대해 관심이 적었지만, 최근에는 정당한 권리, 편법 개선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인력공급업체를 넘어 원청업체까지 전달되면서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원청업체들은 이러한 편법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저하시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이를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계약서에 ‘근로자의 퇴직금 발생 시 지급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포함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원청업체들은 근로자들의 장기 근무를 유도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현장 근로자들을 교체하더라도 일정 비율 이하만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퇴직적립금을 챙기는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것이 이유다.
전문가들은 일부 인력공급업체들의 편법이 근로자는 물론 원청업체와 화주기업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퇴직적립금을 수익으로 창출시키고자 하는 행위가 커질수록 물류현장의 전문성을 결여시키고,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게 된다. 따라서 물류운영대행을 맡긴 화주기업의 만족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물류기업에 대한 불신과 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져 물류산업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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