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택배업 관련 법·약관 그대로, 소비자·택배사 모두 손해

택배업은 지난 1991년 ‘소화물일관수송업’이 법제화 돼 그해 12월 ㈜한진이 최초로 택배업 허가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 올해로 27년을 맞는 대표 생활 물류서비스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택배업관련 법에 지금은 그 근본조차 사라져 찾을 수 조차 없다.

서비스가 제공된지 30년이 가까워 오고,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업 이지만, 관련 법 제정은 고사하고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택배약관과 2007년 재개정에도 여전히 구닥다리 약관과 후진적 법과 제도는 지금도 소비자와 택배기업의 불편과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택배업 관련 규제는 수 십 조원에 달하는 크고 다양한 종류의 물류서비스 산업을 관할하고 있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관련 제도와 규제 하부에 놓여 있다. 예를 들면 25톤 대형 수출입 컨테이너운송 차량과 손바닥 크기의 상품을 배송하는 1톤 택배차량이 같은 법규에 따라 불공정한 규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법·제도도 없는 물류현장에 대한 괴리를 전면 개편하고, 생활과 밀접한 현실적 택배관련 법과 약관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류신문은 지난 2000년, 처음 제정된 택배업 관련 표준약관과 대형 트레일러 화물차에서부터 용달화물 사업까지 40여만 대의 화물운송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고작 5만 여대에 불과한 택배업과 연관된 법규에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향후 무엇이 필요한지 그 대안을 점검해 봤다.

법과 제도도 없는 택배산업, 규모만 10조원 달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6년 대비 13.3% 성장한 총 23억1900만 개를 기록하는 한편 연간 매출액만 5조2천 억원에 달할 만큼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제 택배서비스는 대한민국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류아이템이 됐다.

이와 함께 오토바이 혹은 다마스 등의 소형 화물차로 서비스되는 퀵서비스 물류시장 규모 역시 택배업과 유사한 수준을 넘어섰고, 최근 식음료 배달업 매출까지 더하면 소화물 물류서비스 산업은 10조원을 훌쩍 넘을 만큼 거대한 시장으로 커졌다. 택배사업 초기인 1992년 500만개에 그쳤던 물동량은 26년이 경과한 지난해 23억 개에 이르렀으며, 여타 산업이 이뤄내지 못할 만큼의 지속 성장을 한 셈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택배업 모태는 지난 1989년 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이름도 생소한 ‘소화물일관운송업’. 이후 택배업을 관할하던 자동차운수사업법이 1997년 12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분리되자, 규제완화 차원에서 ‘소화물일관운송업’에 의한 택배업 규정은 삭제됐다. 이 덕분에 현재는 택배업 자체가 전혀 업의 성격이 다른 대형 컨테이너 트레일러 차량과 용달화물운송업을 관할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똑같이 적용받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급성장하고 있는 택배서비스 과정에서 법적 근본도 없고, 예전 택배약관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소비자 피해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택배사업 초창기 개별 택배사업자들은 자체 작성해 사용하던 택배약관을 갖췄지만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소비자들의 택배서비스 피해가 빈발하자 정부는 공정거래원회를 통해 2001년 11월 ‘택배 표약(표약 제00026호)을 만들었고, 소비자 분쟁이 증가하자 또다시 2007년 한국소비자원의 자문을 받아 2007년 말 택배 표준약관을 재개정해 오늘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급성장해 온 택배산업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근본도 없고, 4차 산업의 신 혁명 시대에서 10여 년 전 약관을 그대로 적용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택배업’ 모법삭제, 약관은 10년 전 그대로 사용
그럼 택배업관련 법과 제도부분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잘못되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자.

택배관련 법규의 모태가 되는 ‘소화물일관운송업’법은 1997년 4월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령에 의거, 소화물일관수송업 허가제 자체가 폐지·삭제된다. 또 운송약관에 대한 인가제도 신고제(화운법 제 60조 9항에 의거)로 전환, 화물자동차운송사업자라면 누구나 별도의 허가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시장에 도입된 택배업은 이후 신속성과 편리성으로 대표되는 서비스 자체 특성과 전자상거래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택배업은 이때부터 우후죽순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맞게 된다. 반면 택배현장에서 소비자들은 법적 피해보상 규정조차 없는 상황을 맞으면서 소비자 피해 역시 빈번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기 택배산업의 경우 택배업체별로 규정한 개별 택배약관의 ‘파손면책’, ‘손해배상’ 조항 등을 사업자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으로 소비자 피해를 급증시켰다는 점이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자 급기야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별도의 택배약관을 제정한다. 2001년 6월 공정위는 주요 택배업체들과 협의를 거쳐 ‘택배표준약관’을 마련, 7월 승인해 9월1일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정한 택배표준약관에도 불구, 고객 피해가 개선되지 못하면서 결국 택배약관은 피해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7년 1월 손해배상한도액 인상 및 사업자에게 포장의무 부과 등 표준약관 개정을 건의한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3월 23일 4개 주요 택배사업자들에게 표준약관 개정을 권고, 사업자들이 9월 택배표준약관 개정안을 심사 청구함에 따라 소비자원 및 사업자들의 의견수렴, 약관심사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친 개정안이 2007년 12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개정 약관 ‘소비자 피해감소’ 초점, 손해액 최고 300만원
그럼 2018년 현재 적용되고 있는 2007년 재개정된 택배약관은 애초 제정된 택배약관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완했을까? 우선 2001년 제정됐다 지난 2007년 재개정에 나선 가장 큰 배경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개정된 약관에 정부는 소비자보호원으로 쏟아지는 민원들을 분석, 이를 보완하는 항목들을 개정했다. 따라서 2007년 재개정된 택배약관은 한국소비자원이 택배이용 피해사례를 수집, 각종 소비자 피해조사 결과를 토대로 했다. 그 주요 내용은 ‘손해배상한도액 인상’과 ‘사업자에게 포장의무 부과 등’ 2개 항목이 가장 두드러진다.

택배표준약관 주요 개정 항목 중 ‘손해배상 한도액’을 살펴보자. 2001년 제정된 택배표준약관에는 손해배상 한도액을 공란으로 둬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7년 개정된 표준약관은 택배업계의 통상적 거래관행을 반영, 최대 손해배상액을 50만원으로 명시했다. 또 배송상품 가액에 따라 할증 요금이 있는 경우 손해배상 한도액은 운송가액 구간별, 운송물의 최고가액으로 해 손해배상 한도액이 최고 300만원까지 인상했다.

이와 함께 재개정된 또 다른 항목은 ‘사업자 운송물 포장의무 강화’ 부문이다. 이 항목의 경우 종전에는 사업자가 운송물의 포장이 운송에 부적합 할 시 사업자는 고객에게 필요한 포장을 하도록 청구하거나 고객의 승낙을 얻어 고객의 부담으로 포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정 표준약관에서는 사업자가 운송물의 포장이 운송에 적합하지 않을 때, 고객에게 필요한 포장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택배사업자가 포장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된 사고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는 고객의 포장의무를 사업자 포장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밖에도 3조 2항3호에서는 운송물의 가액에 따라 할증요금이 있는 경우 운송요금에 따라 손해배상한도액에 차이가 있다는 사항을 신설했으며, 5조 2항4호에서는 운송물의 인도 예정 장소 및 인도 예정일(특정 일시에 수하인(고객)이 사용할 운송물의 경우에는 그 사용목적, 특정일시 및 인도 예정일시를 기재함)했다.

이와 함께 6조(운임청구와 유치권) 항목에서 3항의 경우 운송물이 포장 당 50만원을 초과하거나 운송 상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일 때에는 사업자는 따로 할증요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으며, 4항에서는 고객의 사유로 운송물을 반품, 도착지 주소지가 변경되는 경우, 사업자는 따로 추가 요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항목을 신설했다.

현실과 턱없이 다른 약관, 이제라도 적극적 개정 필요
택배 피해 유형의 대부분은 △배송 알림의 부재 △배송 지연 △물품 훼손·파손 △물품 분실 △오 배송 △배송 시간 미 준수 등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택배서비스와 관련한 소비자상담 접수 사례가 지난 7년간 7만 여건 발생, 한해 평균 9907건에 이른다. 이처럼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평균 상담 건수는 연간 1만 여건에 이르는 셈이다.

23억 개의 택배화물이 서비스되고 있는 가운데, 연간 1만 여 건의 소비자 불만 건수를 다른 산업의 시각에서 보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수치다. 사실 글로벌 택배회사들이 평가하는 국내 택배서비스 질은 세계적으로 내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만 워낙 소비자와 밀접한 서비스인 만큼 작은 소비자 불만도 크게 부각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하루 수 백 만개의 택배상품이 서비스되고 있지만, 이를 통제하거나 고객과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중심이 되는 택배관련 법과 제도의 전무다.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는 택배표준약관마저 제정돼 재개정된 지 11년이 지났다.

당장 올해 4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발생한 택배대란은 당장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을 뿐 언제라도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당장 택배기업과 고객의 분쟁이 발생하면 기준이 될 관련법은 앞서 언급했듯이 존재하지 않아 소비자와 택배기업 모두 손해다. 여기다 거대 유통시장이 택배서비스 없이는 불가능해진 산업환경에서 이제라도 관련법 제정과 약관 현실화는 절실하다.

다산신도시에서 발생한 택배기업과 소비자간 분쟁을 살펴보면 지금의 택배업 관련 법규 부재현실과 11년 전 표준약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2007년 재개정된 택배약관에 따르면 다산신도시 주민들이 주장한 직접 배송 원칙은 맞다.

당시 개정된 표준약관에 따르면 직접 배송의 정의는 ‘택배는 운송물을 고객의 주택, 사무실까지 운송해 인도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어 직접 고객에게 전달하는 게 원칙이다. 택배기업 역시 이 같은 지적에는 동의한다. 택배약관만 놓고 보면, 다산신도시 입주민 고객들의 주장이 원칙에 맞는다. 또 택배기사들이 직접 배송을 거부한 상품이 공용 주차장내에서 분실되거나 훼손되면 택배기업이 배상해야 한다. 이는 표준약관에 ‘천재지변이나 기타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제외하고, 나머지 경우에는 택배물건이 훼손되거나 분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

문제는 택배차량이 단지 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걸 표준약관에서 제기된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볼 수 있느냐다. 택배기업 관계자는 “상품의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면 우선 택배회사가 받는 수하인(소비자)에게 발생된 손해가액만큼 변상을 하고, 법적인 분쟁은 상품 배송을 의뢰한 고객사와 택배기업가 협의한다”며 “문제는 이 표준약관을 적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당장 다산신도시의 경우 개당 2천원을 겨우 넘는 택배운임으론 도보로 거리가 먼 단지 내 각각의 고객에게 배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원칙대로 직접 세대 앞까지 배송하라면 택배단가를 올려야 하지만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밖에 택배 표준약관에서 규정한 택배 취급이 가능한 물품의 크기와 무게를 넘어서는 경우도 택배기업 별로 다소 달라 소비자 분쟁이 발생할 경우 명확한 결론을 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매출 5조원의 산업시장을 관할하는 법은 없고, 양측의 분쟁에서 그나마 기준이 되는 약관은 태생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 절대적 기준이 되진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택배표준약관의 현실화, 즉 물가상승, 고가품 증가, 다양한 상품에 맞는 규정과 해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주대 물류공학대학원 최시영 겸임교수는 “배상액과 다양한 상품에 대한 신규 택배서비스 표준약관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제라도 택배서비스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논란과 분쟁상황을 재점검해 소비자와 택배기업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새로운 법과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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