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다.”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한국물류대상’은 물류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우리나라 물류산업 발전에 기여한 이를 발굴하고 공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덕분에 매년 열리는 시상식을 지켜보면 우리나라 물류산업의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물류산업의 변화는 어떠했는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지난 11월 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6회 한국물류대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은탑산업훈장은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에게 돌아갔다. 서병륜 회장은 40여년 간 물류산업에 종사해왔으며, 파렛트와 컨테이너 등을 활용한 공동물류시스템을 도입해 물류비 절감과 기업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글로벌 물류산업의 발전과 우리나라 물류산업의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물류 표준화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해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수상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로 서 회장은 국내 물류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물류표준화 활동 전개 등 물류선구자로 인정받아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니 40년 넘게 물류에 매달려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연히 물류와 연을 맺은 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상을 받았을 때 그 많은 일들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정부가 표창을 해준 것이니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 그동안 물류라는 분야에서 활동해왔던 것에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다소 시간이 흘렀지만 서병륜 회장에게 은탑산업훈장 수상의 순간은 감격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수상 공적서는 서 회장에게 ‘물류선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실제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남들과 달리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물류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 이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물류표준화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특히 그가 주장했던 5톤 트럭의 화물적재함 규격 변경은 화물운송에서의 물류표준화를 실현한 대표적
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면적상 운송거리가 길지 않아 5톤 트럭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5톤 트럭의 적재함 폭의 규격을 1m 90cm로 정했다. 이는 국가표준형 파렛트 규격(1100mm X 1100mm)을 사용할 경우 1열만 실을 수밖에 없는 맹점이 있었다.

“화물을 차곡차곡 실어야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파렛트를 싣고 나면 공간이 남았다. 종이박스에 물건을 대충 실어 날랐지만,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일이었다. 마침 나라에서도 물류효율화에 주목해 적재함 규격 확대를 시도했고, 2m 28cm로 규격을 정하게 됐다. 다행히 규격 확대에 성공하면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5톤 트럭은 표준파렛트를 2열로 실을 수 있게 돼, 표준파렛트 사용률도 일본을 추월하게 됐다. 같은 표준규격을 쓰는 일본도 적재함 규격 변경을 시도했지만, 시장에서 안착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은 지금도 적재함 효율이 우리나라보다 떨어지는 맹점을 안고 있다.”

日지게차 둘러보다 파렛트 중요성 깨달아
서병륜 회장이 물류와 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대우중공업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대우중공업은 지게차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판매량이 신통치 않은 것이 문제였다. 회사는 그에게 지게차 영업과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시간을 충분히 줄 테니 지게차를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지게차 시장 규모는 매우 작았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대형 모델만 팔렸다. 회사는 재고가 쌓인 중형, 대형 지게차를 처분하길 바랐다.

서 회장은 지게차 시장 규모가 큰 나라를 살펴보겠다며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현장을 누비며 일본의 지게차 시장을 꼼꼼히 살폈다. 당시 일본의 지게차 시장 규모는 5만대, 우리나라보다 100배는 컸다. 우리나라는 공장 같은 일부 현장에서만 지게차를 썼지만 일본은 언제 어디서나 지게차를 이용해서 일을 했다. 심지어 농촌에서도 지게차를 흔히 볼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선진국이라서, 산업 규모가 달라서 지게차를 많이 파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는 발품을 팔아가며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하루는 피곤에 지쳐 의자에 앉아 지게차들의 작업 현장을 바라봤다. 활기찬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갈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그가 무릎을 쳤다.

“일본은 지게차마다 파렛트를 꼽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나라는 무겁고 폭이 넓은 물건을 지게차의 포크에 실어 운반했다. 그런데 일본은 지게차에 파렛트를 꼽고 그 위에 사람이 들 수 있는 가벼운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들고 돌아다니더라. 가벼운 물건이지만 파렛트에 실으면 1톤이 넘는 무거운 화물을 한 번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파렛트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가벼운 물건은 사람이 직접 나르는 것이 당연했던 때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지게차 대신 일본의 파렛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마다 국가적으로 파렛트를 현장에 보급함으로써 산업의 선진화를 꾀했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그는 회사로 돌아와 파렛트의 중요성을 알렸다.

“나는 파렛트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것이고, 그때는 파렛트가 널리 쓰이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걸 누구보다 앞서서 하겠다는데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 아닌가?”

‘물류’ 알리는데 심혈 기울여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우중공업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온 서병륜 회장에게 가시밭길 같은 힘든 길이 펼쳐졌다.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파렛트 시장의 성장 기미가 뚜렷한 것도 아니었다. 선진국이 파렛트풀(파렛트 보급·임대)을 만들어 시장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정부를 찾아갔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물류를 공부했고,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조금씩 입지를 넓혔다.

“컨설팅으로 번 돈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빠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대기업에서 물류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그렇게 하나 둘 컨설팅을 하면서 기업 실무자들에게 물류와 파렛트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물류는 생소한 단어였고, 수많은 업무 가운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최하위 업무였다. 그는 물류를 널리 알리고 인식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984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물류연구기관인 한국물류연구원(한국물류협회의 전신)이 출범했다. 연구원 창립을 주도한 건 서병륜 회장이었다. 국내 학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교류의 폭을 넓히며 지식을 쌓은 덕택이었다.

특히 일본 물류산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故히라하라 스나오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히라하라는 일본으로 찾아온 서병륜 회장을 제자라고 부르며 자신이 주도했던 물류표준화는 물론 물류산업의 특성과 육성방안, 파렛트·컨테이너풀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서 회장은 지금도 히라하라 스나오와를 최고의 스승이라 칭하며 그가 남긴 교재와 노트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서 회장은 물류를 알리기 위해 언론 기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많은 기자들이 그를 물류 전문가라고 부르며 취재 과정에서 조언을 듣곤 했다. 국내 최초로 물류를 다루는 소식지인 ‘물류뉴스’를 발행해 배포하기도 했다.

종합물류기업 로지스올을 세우다
서병륜 회장은 1985년 한국파렛트풀을, 1996년에는 한국컨테이너풀을 창립했다. (사)한국물류협회를 만들어 물류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변변한 계약을 따내지 못할 만큼 회사 사정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때를 잘 넘겼기 때문에 지금의 로지스올이 있을 수 있었다. 파렛트풀이나 컨테이너풀이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매출 1조를 돌파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어려움을 견딘 덕분에 지금은 보람도 느끼고 웃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한 로지스올의 파렛트풀, 컨테이너풀 사업은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의 성장세가 눈부시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지스올은 중국의 파렛트풀, 컨테이너풀 시장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인식되어 있다. 특히 ‘RRPP’ 사업은 중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며, 많은 현지 기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병륜 회장은 지속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파렛트 표준화의 중요성을 알렸고, 많은 이들에게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올해 중국 정부가 발표한 ‘차이나파렛트육성계획’을 살펴보면 로지스올의 RRPP사업과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중국 정부의 계획에 따라 로지스올은 자국 기업과 동등한 수준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산둥성 내 파렛트 육성을 담당하고 있는 상무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나는 일본으로부터 물류를 배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물류선진국이었다. 그때 배운 노하우를 이웃나라인 중국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중국의 낙후된 물류현장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이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또 중국의 물류산업이 발전하면 우리나라에게도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펼쳐지게 된다.”

글로벌 파렛트풀을 만들 것
요즘 서병륜 회장은 글로벌 파렛트풀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한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잇는 파렛트풀 시스템을 구축하면 물류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로지스올은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과 미국, 일본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인도와 유럽에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글로벌 컨테이너풀도 실현하겠다는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

로지스올의 파렛트·컨테이너풀 시스템은 우수한 임대·회수·보급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혹자는 파렛트를 직접 제조하면 더 큰 성장을 구가할 것이라고 조언하지만, 서병륜 회장은 선을 그었다.

“로지스올이 직접 제조에 나선다면 분명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로지스올은 국내 시장에서 제조업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상생 때문이다. 풀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제조사들과 상생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고, 품질도 향상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로지스올은 RRPP를 포함한 해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사업 역시 현지 유수의 기업과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뛰어난 파렛트·컨테이너 제조사들을 찾아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이 서 회장의 생각이다.

“40년 넘게 물류를 해오면서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물론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물류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줬다. 앞으로도 물류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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