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대결 아닌 노동환경·구인난 개선위해 노사정 ‘논의 장’ 마련

배송물량 급증에 따라 끊이지 않는 택배현장 사망사고가 사회문제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일선 근로자들을 비롯해 오로지 수익에만 급급해 과도한 노동을 줄이지 못하는 택배산업계 스스로 지금의 패러다임을 탈피하고, 사태를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배송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택배산업은 사실 턱 없이 낮은 수익률에 지난 30여 년간 이렇다 할 지원 없이 홀로 외형만 성장한 대표 업종이다. 따라서 최근 연이은 근로자들의 사망도 이제 택배기업과 근로자들만의 몫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택배업계 원로들은 “최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택배기업을 비롯해 근로자, 그리고 소비자, 그리고 정부관계자 모두가 지금의 근로환경 개선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대한민국 택배산업은 스스로 시장을 성장시키고, 지탱해 왔던 만큼 그 동안의 고된 택배업 운영방안과 노동환경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제라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 유통화주고객사들과 이용자, 그리고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 줄이면 된다?’식 논쟁 무의미, 정답은 ‘택배가격 정상화’

일선 택배현장에서 근로자들의 이어지는 죽음은 진짜 과로사(?)일까. 일부에선 ‘그렇게 힘들고, 과도한 노동이면 배송노동량 자체를 줄이면 될 것 아니냐’란 1차원적 해법을 내 놓는다. 반면 현장 배송근로자들 편에선 “택배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근본적으로 일을 줄일 수 없는 환경인데 어떻게 줄이란 말이냐”란 불만을 터트린다.

택배기업들의 경우 현재 연이은 사망사고의 근본원인에 대해 “단순히 일을 줄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택배배송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택배현장에 배송을 포함한 분류작업등의 원활한 인력공급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렇게 내 놓은 양쪽 모두의 대안은 맞는 답이기도, 틀린 방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재 쏟아내는 양쪽 모두의 해법이 진짜 속내는 없이 원론적인 방안만을 내 놓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너무 싼 택배가격으로 비롯된 것임에도, 정작 택배가격 인상에 대한 논의는 없다.

솔직히 ‘택배업무’를 객관적으로 보면 자체만으로 여타 산업 근로자들과 비교해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이 맞다. 하루 약 14시간의 쉼 없는 노동에도 월 수익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런 저런 제반 비용을 제외하면 300여 만원 수준에 그치지만,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처음 택배 일을 시작하면 3개월 안에 10~15kg 정도의 몸무게가 감량될 만큼 힘든 직업이다.

상상해 보자. 하루에 수 백개의 상품을 분류해 배송차량에 배송 순서대로 적재하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루 300~400여개의 상품을 배송하는 근로 상황은 말 그대로 고되다. 또 택배차량에서 적어도 200회 이상 타고 내려야 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10킬로 이상의 무거운 배송상품을 승강기 없는 빌라 5층까지 배송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기다 기상까지 나쁘면 택배현장은 그대로 과도한 노동이 되고, 고역이 된다.

이렇다 보니 현재의 배송수수료로는 쉽게 배송인력을 수급하지 못한다.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일부업무의 경우 외국인 고용도 요구해 봤다. 결국 택배기업들과 일선 영업소장들은 이번 사태 해결 방안에서 적정 임금을 통해 원활한 인력 수급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한편 일부 택배근로자들은 “영업소장 눈 밖에 나면 재계약을 안 해줄 수 있어 늘 고용이 불안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경우는 국내 택배시장 1위 CJ대한통운의 몇몇 고수익 지역을 제외하면 드문 편이다.

한진택배 운영담당 권경열 상무는 “여전히 택배현장 근로자 구인은 어렵다”며 “대다수 지역의 경우 영업소장들이 근로자 수배에 어려움을 겪고, 이들은 택배기업과 영업소 측에서 상전처럼 모시는 귀한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택배노조의 과로사 주장은 힘든 노동 때문이 맞지만, 사망사고의 주 원인은 택배현장의 힘든 노동을 나눌 수 있는 근로자 구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구인을 쉽게 하는 방법은 택배가격을 인상하는 것 말고는 없는 셈이다.

그럼 왜 택배노조와 일선 배송근로자들은 분류작업을 사망사고의 요인이라고 지적하며, 택배기업의 책임으로 모는 것일까? 바로 여기 숨은 노사 간 속내가 모두 담겨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류작업에 속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통상 택배 분류작업의 경우 과로사로 이어질 만큼의 고된 노동은 아니지만 수익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작업이다. 오전 일찍 출근해 6~7시간에 이르는 택배상품 분류업무는 최종 배송을 원활히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다.

하지만 직접 수익으론 이어지지 않으니 근로자들 입장에선 분류작업을 기업 몫으로 넘겨야 돈이 되는 배송량을 늘릴 수 있으며, 수입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기업에게도, 근로자에게도 꼭 필요한 업무지만 외면을 받고 있는 셈이다. 결국 노사간의 논쟁은 택배 작업과정에서 돈이 되느냐 여부에 따른 양측의 주도권 싸움 형국이다.

 ◆현 택배 운영 패러다임 근본부터 서서히 바꿔야, 모두가 살아

이에 따라 과도한 택배 업무에서 벗어나려면 수익만을 우선하는 지금의 패러다임을 바꿔 일선 근로자들 스스로 배송 물량을 줄이고, 남는 물량배송에 나설 대체 구인을 수월하게 할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금의 수익 상당부분 보존할 수 있는 택배가격 인상이 필수 선제조건이다.

아주대 물류대학원 최시영 겸임교수는 “택배서비스를 요구하는 원청업체들은 365일 24시간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반면 택배서비스를 주 5일 근무로 한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라며 “쿠팡과 같이 근로자는 주 5일 근무만 하고, 하루 배송량을 200개 내외로 한정시켜 택배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싼 택배가격을 정상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택배현장의 연이은 사망사고는 택배기업들과 근로자 스스로 수입 증가를 위해 하루 400개 이상의 물량을 떠안은 과도한 노동환경을 만들어서다. 하지만 사실은 너무 싼 1개당 낮은 수익률을 만회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며, 택배기업들 역시 규모화를 위해 이를 방조해 나타난 결과다. 택배 현장 근로자들은 “배송 할당량이 있어 이를 어길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쉬고 싶지만 일을 줄일 수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현 수수료에서 라스트마일 배송 수수료를 나눌 수 있는 대체 물류기업들이 있음에도 근로자들 스스로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물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택배 라스트마일 배송 전문기업 커넥트히어로 바통의 이이삭 대표는 “현재의 택배 배송수수료 중 30~40%만 나눌 의향이 있다면 노동량을 크게 줄이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대체 방안이 있다”며 “택배서비스 기존 패러다임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전환하는 전향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배송근로자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일부 택배영업소에선 “가뜩이나 구인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신규 택배 지원자들의 건강진단서부터 먼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란 우스개소리도 나온다.

한국물류시스템연구원 조윤성 대표는 “지금부터라도 택배기업 본사에선 지역별, 개인별로 물리적인 배송물량을 세밀하게 점검, 과도한 노동을 방지할 가이드라인을 갖추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택배서비스 제공에 대한 다양한 변수도 많은 만큼 이를 고려해 합리적인 배송수수료를 만드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일선 택배근로자들과 택배기업, 그리고 서비스를 의뢰하는 고객들과 더불어 택배산업 관계자들 사이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정부 관계자들 모두 근본적인 해법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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