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200만명 이용하는 택배, 더 길고 멀게 보는 안목·호흡 필요

우리는 이제 일상에서 택배서비스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취급된 단순 택배화물은 28억 여개.

산업시장에서 쏟아내는 이형(비규격)화물과 기타 택배성 중량화물 물량까지 합산하면 연간 택배 물동량은 30억개를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되며,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 택배 물동량도 36억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쏟아지는 택배 하루 배송물량을 계산하면 올해 하루 배송되는 택배만 1200만개에 이른다. 대한민국 성인 인구(15세~64세)가 3,736만명 중 1200만명 가량은 매일 매일 택배를 보내고 받는 셈이다.

만약 택배서비스가 일순간 멈추면 우리의 생활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대한민국 일상은 말 그대로 올스톱 될 것이며, 상상만 해도 끔직한 악몽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 필수적인 택배서비스가 창업 이래 가장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너무 치열한 경쟁 일변도 운영으로 서비스와 가성비는 높아진 반면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아 역한 냄새 뿐 아니라 매일 매일 살얼름 판이다.

이에 따라 이제 지난 30여년의 고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금까지의 앞만 보고 성장만을 추구했던 서비스 패러다임에서 바꿔 더 크고 긴 호흡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편리하지만 사업자와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행복하고 더 낳은 택배산업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며,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할지 이제 진지한 고민을 할 시점이다.

◆불필요한 요소 먼저 제거해야 택배산업 살아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난 뒤 회사가 망해갈 즈음 복귀 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새 제품 추가가 아닌 불필요한 상품을 먼저 제거하는 일 이었다. 그렇게 출현한 제품이 아이폰이다.

지금의 택배산업이 스티브잡스 복귀 시점과 딱 맞는 형국이다. 택배산업도 지금의 위기에서 새로운 방식 도입이 아닌 현 서비스 체계에서 무엇을 먼저 제거해야 할지 고민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 무엇을 먼저 제거해야 할까? 당장 시장에서 제거해야 할 첫 번째 항목은 지난 30여 년간 끊임없이 이어온 과당경쟁에 따른 낮은 택배가격의 청산이다. 싸구려 택배가격 청산을 위해서는 택배회사를 비롯해 일선 영업소 집배사업자, 그리고 서비스 최 접점에서 고객을 만나는 배송기사들까지 눈앞에 수익만을 쫓는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제거해야 할 요소는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의 개인주의’다. 택배기업은 지난 30여 년 동안 천문학적인 재정 투자와 일선 택배현장에서 근로자들의 노동력 감소를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개선방안을 만들어 냈음에도 최근 연이은 근로자들의 사망사고의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이처럼 택배산업의 특성상 나만 잘해서는 불가능한 구조임에도 모든 의무와 책임을 택배기업 혼자 오롯이 감당하게 하는 건 공평치 않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려면 택배기업뿐 아니라 전국적인 영업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집배점 사업자들과 여기 소속된 배송기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지난 28년 간 시장을 방치해온 정책 담당자들도 책상에서 나와 택배현장의 이해를 통한 현실적 지원책을 내 놓을 시점이다.

이와 함께 현재의 택배서비스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서비스 가치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배송기사 처우 및 노동 강도 개선이다. 이에 따라 택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졌다.

현재 국내 택배기업들의 택배 가격은 여타 해외택배 가격과 비교해도 1/4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집계된 국내 택배 평균가격은 2,269원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을 대표하는 택배회사 페덱스는 1만90원, UPS는 9,760원에 이르며, 이웃나라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역시 7320원을 기록, 턱 없이 낮은 수준을 보인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급증하는 택배물동량을 원활하게 서비스하고, 현재 끊이지 않는 택배기사들의 사망사고를 방지하려면 하루 배송량을 줄이는 방안과 여기서 감소하는 수익보전을 위한 택배가격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택배이용 사회구성원 모두 현장 고단함에 대한 논의 먼저 나서야

옛 속담에 ‘우는 아기 먼저 젖 준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택배산업은 이 속담처럼 지난 3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힘 든다고 먼저 울어 본적이 없는 대표적인 바보산업이다. 덕분에 제대로 된 지원 한번 받지 못한 천덕꾸러기 산업이기도 하다. 당장 육상 컨테이너 운송업계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운임이 하락하자 파업으로 대응하거나, 운송거부 등으로 자신들의 어려움에 대한 의사표현을 확실히 밝혀왔다.

반면 택배업계는 기업들도 근로자들도 최근 들어서야 힘 든다는 목소리를 조금씩 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이는 이제부터라도 택배를 이용하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택배시장의 고단함에 대한 대안마련 논의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한편 택배연대노조의 과로사 주장에도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보다 냉철하게 원인과 배경을 점검해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산업계 산재 사망사고율은 지난 2010년 1만 명 당 1.36명(연간)에서 2018년 1.12명 수준이다. 반면 최근 택배현장의 사망 사고는 정확한 사인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올해에만 전체 6만 여명 중 근로자들 중 20여 명에 이르러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이들의 죽음을 감정적으로 판단해 과로사로 추정, 택배기업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택배현장에서의 급증하는 사망사고율의 배경을 찾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 모색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택배노조와 택배기업들 간 책임논쟁이 되고 있는 ‘택배터미널에서의 과도한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부문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들은 ‘노동 강도가 너무 높다’고 말하지만, 택배기업 담당자들은 “분류작업의 경우 단지 시간이 걸릴 뿐, 연이은 사망 배송근로자들의 과로사에 직접 요인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여기다 “이미 배송수수료에 분류작업 관련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를 기업이 모두 부담하라는 요구 역시 과하다”고 항변한다. 향후 진행되는 배송기사 1인의 적정 배송량은 200개를 넘지 못할 전망으로 정부와 기업이 1인 적정 처리물량을 한정할 경우 수입은 반으로 감소될 수도 있다. 택배노조도 분류인력 추가 투입으로 노동 강도를 낮춘다는 논리를 내 세웠지만, 정작 적정 배송물량 감소에 따른 수익 하락에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택배기업과 일선 근로자 스스로 지금의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면 뾰족한 해결방안은 없다. 아주대 물류대학원 최시영 겸임교수는 “택배기업과 근로자 스스로가 일감을 나누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함께 찾고, 택배기업들 역시 시스템을 통해 과도한 배송 근로 초과지역을 선별해 추가 근로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이 오로지 수익만을 좇는 운영 및 근로방식을 버리지 못하면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택배기업과 근로자가 지금의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최후의 방안 한 가지가 더 있긴 하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육상운송시장의 안전운임제와 같은 과도한 규제에 나서는 안이다. 1인당 근로시간을 일반 노동시장에서처럼 52시간으로 제한하거나, 하루 배송물량을 물리적으로 수행이 가능한 만큼으로 감량하는 강제 안이다.

택배요금 역시 육상운송시장에서처럼 상품 크기와 무게에 따라 정부가 개입해 가격을 조종하거나 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밖에도 일선 택배영업소들의 운영방식 개선 등 뒤 따라야 할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택배현장 배송기사들의 건강관리 역시 별도의 기구 및 재단설립을 통해 전체 택배산업 관계자들의 관리 방안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시점이다. 택배기업 모두가 소속 배송기사들의 건강을 일률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별도의 상생기금을 통해 현재 택배전용 ‘배’ 번호차량을 관리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택배사업자 협의회가 주관해 전체 배송기사와 상하차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건강관리방안을 마련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다 소비자들의 빨리 빨리 배송 요구 문화도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임계점에 도달해 있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모든 택배산업 제공자와 소비자 모두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택배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전체 서비스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택배산업은 기업과 배송근로자(택배산업계), 배송 의뢰 고객(온라인 유통사) 혹은 수령하는 소비자등 누구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산업계를 일순간에 멈추게 할 수 있는 유기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처럼 배송의뢰 물량이 급증한다고 온라인 유통판매를 금지할 수도, 최종 배송인력을 기계처럼 무한정 늘릴 수 있는 산업도 아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택배산업과 연관된 관계자들과 이를 조정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상호 배려를 통한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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